한국유라시아연구원 학술대회 발표영상 http://seac.kr 한국유라시아연구원 학술대회 발표영상 RSS Feed ko Fri, 26 Apr 2024 06:40:05 +0900 eurasianculture@naver.com 하가점하층문화 성자산석성에 대한 3D 공간정보분석 연구 http://seac.kr/insiter.php?design_file=38923.php&article_num=18   유라시아문화학회 제 8회 학술대회`동북아의 ‘석단총-석성’문화와 춘천지역`한민족문화가 본격적으로 발아하는 신석기시대 이래 춘천지역의 가장 두드러진 유적 형태중 하나로 ‘적석형 고인돌’이 저명하다. 적석형 고인돌은 한민족 특유의 제천문화를 담지하고 있는 ‘무덤 겸 제단’으로, 특히 한민족 제천문화의 양대 표지인 적석단총과 거석단총의 요소를 모.. Wed, 24 Nov 2021 01:14:19 +0900 하가점하층문화와 고구리 석성의 축성법 비교 연구 - 옹성과 치를 중심으로 http://seac.kr/insiter.php?design_file=38923.php&article_num=17   유라시아문화학회 제 8회 학술대회`동북아의 ‘석단총-석성’문화와 춘천지역` 한민족문화가 본격적으로 발아하는 신석기시대 이래 춘천지역의 가장 두드러진 유적 형태중 하나로 ‘적석형 고인돌’이 저명하다. 적석형 고인돌은 한민족 특유의 제천문화를 담지하고 있는 ‘무덤 겸 제단’으로, 특히 한민족 제천문화의 양대 표지인 적석단총과 거석단총의 요소.. Wed, 24 Nov 2021 01:12:44 +0900 고인돌과 적석총의 구조적 양식에 따른 제천문화 인식 http://seac.kr/insiter.php?design_file=38923.php&article_num=16  유라시아문화학회 제 8회 학술대회`동북아의 ‘석단총-석성’문화와 춘천지역` 한민족문화가 본격적으로 발아하는 신석기시대 이래 춘천지역의 가장 두드러진 유적 형태중 하나로 ‘적석형 고인돌’이 저명하다. 적석형 고인돌은 한민족 특유의 제천문화를 담지하고 있는 ‘무덤 겸 제단’으로, 특히 한민족 제천문화의 양대 표지인 적석단총과 거석단총의 요소를 모.. Wed, 24 Nov 2021 01:10:18 +0900 중국 동북공정과 동북아의 미래 : 2021 상반기 유라시아문화학회 세미나 http://seac.kr/insiter.php?design_file=38923.php&article_num=15   2021년 상반기 유라시아문화학회 세미나   서길수 교수 초청 강연 "중국 동북공정과 동북아의 미래" ○ 일시 : 2021년 6월 5일 토요일 오후 3시 ~ 오후 5시 ○ 장소 : 온라인 줌zoom 화상 ○ 주최 · 주관 : 유라시아문화학회 ○ 후원 : (재)롯데장학재단, (재)청구고고연구원    Wed, 24 Nov 2021 01:02:50 +0900 백두산문명과 한민족의 형성 http://seac.kr/insiter.php?design_file=38923.php&article_num=13  `B.C.4000년경 환웅족은 백두산 천평지역을 도읍으로 삼아 요동 천평지역과 요서 청구지역을 배달국의 동·서 양대중심으로 삼아 청구·천평·흑룡강 일대를 두루 경영하였다. 천평 권역은 백두산의 동서북 산록 일대에 대한 지칭이었으며, 그 구심은 배달국 으뜸 소도제천지인 백두산 신시(神市·신불·신밝)였다. 백두산 소도제천지는 본질적으로 제천을 통해 사람 속의 `밝.. 관리자 Fri, 31 Jul 2020 18:56:39 +0900 동북아의 백산신앙과 백두산 - 土着性과 越境性 http://seac.kr/insiter.php?design_file=38923.php&article_num=14   `고대사회의 사람들은 산이라는 신성한공간을 통해 성(聖)스러움과 직접 접촉할 수 있었다. 여기서 산악숭배와 산악신앙이 생겨난다. 고대 조선의 백두산도 靈山으로 사람들의 외경을 받는 신산 혹은 천산의 의미를 지니며 조종산의 위격을 지녔고 환웅천왕의 강세와 단군이 태어난 역사문화적 위상을 지닌 성소였다. 백산신앙은 백두산의 백산소도를 중심으로 하여 .. 관리자 Fri, 31 Jul 2020 17:59:58 +0900 1910·1920년대 식민지조선 지식인들의 '백두산=단군발상지'론과 '만주=단군강역'론 http://seac.kr/insiter.php?design_file=38923.php&article_num=12   `백두산을 단군의 발상지, 만주를 단군조선의 도읍지와 강역으로 보는 견해, 또 만주족을 단군의 후예로 보는 견해는 1910·20년대 조선지식인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표명되기 시작하였고 1930·40년대에 이르면 만주가 조선 역사의 발상지이고 요람이었다는 주장이 일반화되었다. 당시 지식인들이 주장한 강역의 크기는 만주를 향한 영토적 욕망을 나타낸 것이라기 .. 관리자 Fri, 31 Jul 2020 16:52:48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