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황오제 시대와 고고학  

 

​○ DOI 

https://doi.org/10.47527/JNAH.2021.08.5.1

 

○ 저자 

최몽룡(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국문요약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역사신화인물 “삼황(三皇)”과 “오제(五帝)”의 합칭(合稱)으로 옛날에는 삼황은 원고삼황(遠古三皇)으로 천황씨(天皇氏)⋅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를 지칭하고, 오제는 원고오방상제(遠古五方上帝)로 다섯 신선인 백제(白帝), 청제(靑帝), 황제(黃帝), 염제(炎帝), 흑제(黑帝)를 말한다. 후일 추가⋅보완되어 삼황은  상서대전 에서는 수인(燧人)⋅복희(伏羲)⋅신농(神農),  춘추운두추 에서는 복희⋅여와⋅신농,  풍속통의 에서는 복희⋅축융⋅신농,  삼자경 에서는 복희⋅신농⋅황제,  장자 와  강감역지록 에서는 유소씨(有巢氏)⋅수인씨(燧人氏)⋅지생씨(知生氏)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오제는  여씨춘추 는 태호⋅염제⋅황제⋅소호⋅전욱,  대대예기는 황제⋅전욱⋅제곡⋅요⋅순,  자치통감외기 는 황제⋅소호⋅전욱⋅제곡⋅요를 말한다. 이들은 절강⋅감숙⋅하남⋅산동⋅산서성에서 발굴되는 양저(良渚)⋅대지만(大地灣)⋅앙소(仰韶)⋅용산문화(龍山文化)와 관련이 많으며, 그 기간은 기원전 9684년 - 기원전 2015년 사이로 추정한다. 매년 청양절(淸明節)에 섬서성 보계시와 호남성 주주에 위치한 염제릉과 섬서성 황릉현에 위치하는 황제릉에 국가적으로 제사 지내는데 이는 염⋅황제는 화하민족의 조상으로 한족(漢族)은 염황의 자손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의 시작은 진시황이 기원전 221년 6국(六國)의 통일 후 돌아와서 천자의 분묘를 일률적으로 “능(陵)”으로, 일반 서민의 무덤은 “묘(墓)”로 정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또 한대(漢代)에는 천자의 릉 옆에 반드시 “묘(廟)”를 세울 것을 정하였다. 진시황은 한민족(漢民族)의 정체성을 통해 왕조의 합법적인 정통성을 알리고 민심을 집결시키는 통치자의 수단을 십분 발휘했다. 그 이후 한, 당, 송, 원, 명, 청의 역대 통일왕조에서도 진시황을 따라 삼황오제의 능이나 묘에 매년 제사지내고, 능묘를 보살피고 중수하는 등 신경을 써왔다. 오늘날의 ‘중화문명탐원대공정’도 그런 면에서 이해가 된다.

 

○ 주제어   

삼황오제, 삼황, 오제, 복희, 여와, 신농, 황제, 소호, 염제, 전욱, 제곡, 요, 순, 중화문명탐원공정, 용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