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군 군현의 변천 과정
○ DOI
https://doi.org/10.47527/JNAH.2024.02.10.185
○ 저자
윤병모(성신여대 인문과학연구소)
○ 목차
Ⅰ. 머리말
Ⅱ. 낙랑군 호구부 1⋅2⋅3구역 검토
Ⅲ. 낙랑군 호구부 4구역 검토
Ⅳ. 부도위와 후국 체제의 낙랑군
Ⅴ. 맺음말
○ 국문요약
낙랑군 호구부 중에 1구역의 조선과 남감, 증지, 점제, 사망, 둔유까지 6개현과 3구역의 수성, 누방, 혼미, 패수, 탄열 5개현, 4구역의 동이와 부조현을 제외한 동이, 잠태, 화려, 사두매, 전막 5개현 등 16개현이 통합 낙랑군 이전부터 있었던 본래 의미의 낙랑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낙랑군 호구부 4구역의 6현과 3구역 일부 또는 전부가 임둔군의 잔현이라는 주장은 삼국지예전에 산천에 의해 각자 영역을 나눈다는 기사와 정면 배치되는 문제가 있다. 4구역에 임둔군으로 동이현 하나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임둔군은 4구역에 설정되기 어렵다. 설립 당시 최초의 임둔군은 낙랑군 호구부에서 표현되는 지역의 밖에 있었다고 판단된다. 최초의 진번군과 임둔군이 황해도와 동해안 쪽에 설치되었다면 낙랑군은 설 자리가 없고 위만조선의 방수천리도 구성되지 않는다. 낙랑군 호구부 4구역이 임둔군이라는 주장을 인정한다면 22만구에 3개의 현을 거느린 현도군과 15개 현을 가진 임둔군이 하나의 지역에 두 개의 군현이 겹쳐져 있는 현상을 초래한다. 기원전 128년에 설치되는 창해군이 동해의 예 지역에 설치되었다고 주장하며 창해군이 그 후 20년 만에 같은 지역에 설치되면서도 전혀 다른 이름인 현도와 임둔군이라 한 것도 문제가 된다. 단단대령 이동의 협소한 지역에 28만구의 창해군과 22만구의 현도군, 15개현으로 이루어진 임둔군이 20년 간격으로 이중삼중으로 설치될 이유는 전혀 없다. 동이현은 호구수와 인구수가 매우 축소된 형태로 4구역에 이동, 배치된 옛 임둔군의 한 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낙랑군 호구부,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동이현, 불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