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OI
https://doi.org/10.47527/JNAH.2021.02.4.35
○ 저자
윤병모(성신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
○ 논문명
건창 동대장자 유적과 고조선
○ 목차
Ⅰ. 머리말
Ⅱ. 건창 동대장자 묘지의 구조와 유물
Ⅲ. 건창 동대장자 무덤의 성격과 족속
Ⅳ. 맺음말
○ 국문요약
건창 동대장자 유적에서는 모두 173개의 무덤이 조사되었으며, 이 가운데 47개의 무덤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본고에서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47개의 무덤 중에서 유물이 출토된 34개의 무덤을 대상으로 무덤의 구조와 출토유물의 성격을 검토하였다. 특히 동대장자유적 가운데 M11과 M45 무덤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에 금장식(金粧飾)이 이루어져 있는 점에 주목하였으며, 요녕식 동과가 함께 출토된 점을 같이 다루었다. 이러한 특징은 동대장자 묘지에서도 M11과 M45 무덤이 수장급(首長級)무덤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연(燕)의 요소가 강하게 투영된 M40과 M47 무덤에서는 연식 도기(燕式 陶器)와 예기(禮器) 등의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M40과 M47 무덤은 연문화와 재지계 문화가 융합된 무덤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M32와 M34, M45 무덤에서 개궁모가 집중된 현상을 주목하였다. 이로 본다면 동대장자 유적을 조영한 토착계는 이를 정치적 그리고 군사적 권위의 수장층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위략』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은 연에 대해 점점 강한 자세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요동지역에 존재하였던 고조선과 동일한 정치체를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여 지는 진번이 요서에 위치한 것으로 보고, 진번이 전국연에 가장 먼저 쉽게 노출되는 현상을 주목하였다. 때문에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에서 연의 첫 번째 상대는 조선이 아닌 진번으로 해석된다. 진번은 연소왕 시절에 진개의 공격을 받고 요서 곧 건창 동대장자에서 물러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 구체적인 시기는 기원전 282년부터 280년 사이로 연의 공격을 받은 진번은 요서에서 퇴각하여, 요하이동 곧 평양지역으로 옮겼다고 생각된다.
○ 주제어
동대장자, 대릉하, 연문화, 토착계, 비파형동검, 개궁모, 진번, 고조선, 사기(史記), 위략(魏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