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조선의 대한전(對漢戰)과 왕검성

 

​○ DOI 

https://doi.org/10.47527/JNAH.2022.02.6.183 

 

○ 저자  

윤병모(성신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 

  

○ 목차 

Ⅰ. 머리말

Ⅱ.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과정

Ⅲ. 위만조선의 패수와 왕검성

Ⅳ. 맺음말

  

○ 국문요약  

 본 논문은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을 『사기』조선열전을 중심으로 살펴 본 것이다. 이중에 가장 중요한 지리적 조건은 패수와 왕검성 그리고 열수에 관한 것이다. 전쟁의 대외적인 요건으로 한나라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북방의 흉노족이다. 기원전 121년 부터 흉노가 한에 패해 항복하며 전세는 역전된다. 이후 한나라는 동남쪽의 남월과 동월 등을 제압하고 동북의 위만조선으로 그 침략의 방향을 튼다. 『사기』 조선열전에 나오는 요동은 오늘날 요하 이동이라기보다는 요서 지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위만조선을 침공하기 위해 제에서 발해로 간 한나라 군사는 5만으로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 위만조선 쪽에서도 군사적 대응이 있었다고 보여 진다. 한과의 협상과정에 말 5천 필을 요구한 점도 위만조선이 군사강국임을 증명한다. 하지만 위만조선 내부 지도층의 분열로 결국 왕검성은 함락한다. 『사기조선열전에 나오는 열구 즉 열수는 대동강으로 보기 어렵다. 이 열수는 현재의 요하로 인정된다. 패수는 오늘날 요하 서쪽에 있는 요양하로 보여 진다. 또 패수와 왕검성은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험독은 큰 강을 끼고 있었으며 결국 험독은 오늘날 요하 옆에 있었다고 판단된다. 험독 곧 왕검성은 요하 서쪽에 있는 오늘날 대안현의 손성자고성으로 인정된다.

 

○ 주제어   

위만조선, 우거왕, 한, 패수, 왕검성, 열수, 험독, 요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