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OI

 

https://doi.org/10.47527/JNAH.2019.08.1.167


○ 저자

장지화(경주 모화초등학교) 

 

○ 논문명  

광복 이후 초⋅중학교 국사교과서의 ‘단군조선사’ 분야 개정 방향 연구 

 

○ 목차 

Ⅰ. 머리말 

Ⅱ. 국사교과서 단군조선사 분야의 개정 과정

    1. 미군정기/교수요목기∼제3차 교육과정 시기

    2. 제4차 교육과정∼제6차 교육과정 시기

    3. 제7차 교육과정∼2009 개정교육과정 시기 

Ⅲ. 국사교과서 단군조선사 분야의 개정 배경

    1. 광복 이후 민족주의 정서의 고양과 단군조선사 교육의 혼선

    2. 1980년 이후 세계화 추세와 단군조선사 교육의 후퇴

    3. 2000년 이후 동북공정과 단군조선사에 한 인식 변화 

Ⅳ. 국사교과서 단군조선사 분야의 개정 방향에 한 제언

    1. 한국상고사 관련 연구 동향

    2. 단군조선사 이전 배달국사 첨입에 한 제언

    3. 단군조선사 및 열국사의 기본 서술 방향에 한 제언 

Ⅴ. 맺음말

 

○ 국문요약

  본고는 광복 이후 초⋅중학교 국사교과서의 단군조선사 분야의 개정 과정을 분석하고 그 개정의 배경을 탐색하며, 단군조선사 분야의 개정 방향을 제언한 연구이다. 

 

  광복 이후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한국사 복원 노력으로 초⋅중학교 교과서에 단군조선 건국이 사실로 기술되었다. 국정교과서 체제로 전환되는 3차 교육과정에서 신화로 기술되었다가 이후에는 건국이야기로 기술되었다. 단군조선의 건국 시기는 『삼국유사』를 기준으로 B.C.2333년으로 기술되었다. 강역은 대동강 유역에서 점차 요령지방까지 확대되었다고 보았으나 정확한 설명이 부족하다. 단군조선 이전사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단군조선 이후 계승국가들에 대해서는 초등학교 국사교과서의 경우 모든 교과서에 나타났으나 6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에서부터 빠지게 되었다. 반면 중학교 국사교과서의 경우는 비교적 자세하고 지도로도 표시되어 있다. 초⋅ 중학교 국사교과서 모두 단군조선과의 계승관계가 명백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

 

  초⋅중학교 국사교과서의 단군조선사 분야가 변화해온 배경에는 시대적 상황, 역사연구 경향의 변화, 그리고 한국인들의 역사인식의 변화 등이 총체적으로 맞물려 작용하고 있었다. 먼저 광복 이후에는 오랜 중화사관과 식민사관에 의한 역사왜곡에서 벗어나 올바른 한국사 정립을 위해 많은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노력하였다. 그러나 곧 이은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으로 이러한 노력이 좌초, 오히려 식민사학자들이 강단사학의 주류로 자리잡게 되었다. 새롭게 시작되었던 올바른 한국사 정립을 위한 움직임은 다시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80년 이후 세계화 추세 속에서 한국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반면 서구중심의 가치관의 우세 속에서 한국사나 한국문화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퇴조되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상고사 청구 소송 및 국정교과서 저작 및 배포금지 가처분신청, 국내외 고고학 성과에 따른 상고사 연구의 진전 등으로 단군조선사 연구 및 교육을 되돌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 되었다. 2000년로 접어들면서 동북공정이 알려지며 단군조선사에 한 국민 적 관심은 높아졌으며 한국상고사에 대한 인식이 크게 진작되었다.

 

  우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의 차원에서 요서지역 고고학 성과를 기반으로 단군조선의 시기와 강역에 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단군조선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되었으나 서서히 단군조선 이전 시기로 관심이 확장 되어갔다. 그 결과 요서지역 동석병용문화인 홍산문화는 배달국문화로, 전기 청동기문화인 하가점하층문화는 단군조선 문화로 논의가 모아져 갔다.   배달국⋅단군조선에 대한 연구는 시기⋅강역의 문제 뿐 아니라 사상⋅문화에 대한 연구로 확장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곧 배달국⋅단군조선의 사상⋅문화를 ‘선도문화’로 바라보는 시각이 등장하여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이론적 대안을 제시하게 되었다. 홍산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유물인 단⋅묘⋅총과 옥기가 선도제천 유적⋅유물임을 밝힌 연구가 등장하고 이러한 선도 제천문화가 한국 상고문화의 가장 큰 특징인 제천의례의 전형임이 밝혀졌다. 또한 이러한 선도제천문화가 요서⋅요동⋅한반도를 아우르고 있었으며 그 양 중심지가 요서 홍산문화 지역(청구)와 요동 백두산 서편 일대(천평, 신시)임이 밝혀졌다.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 곧 요하문명론과 장백산문화론을 막아내면서 한국 상고사의 양 중심지를 바로세우는 의미가 있었다.

 

  필자는 이러한 연구 성과들에 기반하여 한국사의 첫머리, 단군조선사 이전 에 배달국사를 첨입해 넣을 것을 제언하였다. 한국사의 첫머리가 바로 세워져야 단군조선사의 문제도 비로소 명확하게 풀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곧 단군 조선의 건국시기와 건국과정, 단군조선의 한반도와 요동⋅요서를 아우르는 강역 문제, 위만조선과 한사군이 단군조선의 국경 부근에 있었던 문제, 단군조선사의 내용적 실체인 선도문화의 문제, 단군조선을 계승한 부여 이하 열국들의 문제가 보다 자연스럽고 명쾌하게 서술될 수 있는 것이다. 배달국→단군조선→부여→열국시대로 이어지는 한국사 계통성 정립을 통해 배달국 이래 면면히 이어져 온 한국 고유문화의 실체인 선도문화가 역사의 첫머리에 자리잡게 될 때 비로소 한국적 정체성이 바로서게 될 것이다.

 

○ 주제어  

동북공정, 단군조선, 국사교과서, 선도문화, 제천문화, 홍산문화, 배달국, 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