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오후 1시 분터 6시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동북아고대역사학회 제 1회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며칠 전 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걱정을 하였습니다만,
마치 1회 학술대회를 축하하듯 매우 맑은 날이었습니다.
이번 학술대회는 백두산의 역사문화적 연고를 살펴보는 국내 최초의 학술대회였습니다.
그동안 백두산 화산 폭발 등 물리적인 부분은 여러차례 관심을 끌었지만,
역사문화적 귀속성에 대해서는 그저 당연히 우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미 동북공정과 그 동진이론인 장백산문화론(이하 백두산 공정)을 통해
백두산의 역사문화적 귀속권을 중국의 것으로 바꾸고 있었습니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이에 대한 국내 학계 및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고자 이번 학술대회를 마련하였습니다.
▲ 축사를 하는 허성관이사장
▲ 축사 중인 권나은 원장
이런 의미 깊은 학술대회를 축하하고자 특별한 분들이 오셔서 축사를 해주셨습니다.
먼저, 학술대회를 후원해주신 롯데장학재단의 허성관 이사장님께서 함께 해주셨고요,
이어 사단법인 국학원의 권나은 원장님께서도 직접 발걸음을 해주셨습니다.
▲ 함대권 관장의 축하공연
그리고, 2017 청주 세계무예마스터십 대회 개인부문 대상을 차지한
대한단무도협회 산하 신사단무도의 함대건 관장의 축하공연이 있었습니다.
예로부터 한민족은 중국에서 유교, 불교, 도교가 도입되기 이전에 고유의 문화전통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고조선의 천지화랑에서 신라의 화랑도까지 심신수련법으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함대건 관장은 그 맥을 이은 선도무예를 선보였습니다.
▲ 조법종 교수
학술대회의 첫 번째 발표자는 우석대학교의 조법종 교수였습니다.
조교수는 “백두산공정은 백두산을 중국적 표현인 장백산으로 표현,
이 일대가 여진족의 발상지라는 것을 강조하고 여진족 문화의 연원으로 백두산 일대를 재구성하고 있으며
고구려가 이들의 뿌리라고 한다. 고조선 발해 역시 장백산문화를 구성하는 핵심역사체 라는 주장함으로써
백두산에 대한 우리 민족의 역사문화적 연고권을 제거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미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바꾸었기에
이와 같은 중국 논리에 따르면 백두산 일대에 대한 우리민족의 역사문화적 귀속성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이어서 “한족의 만주지역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없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중화 패권주의적 역사해석을 동원, 기존 이 지역에 살고 있었던 민족과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켜
해결하려는 의도를 가졌으며, 이는 동북공정의 추진과정에서 발생한 한국과의 충돌을 회피하면서
이 지역을 장악하려는 우회전략”이라 주장하며 학계 및 정부차원의 대응을 촉구하였습니다.
▲ 하문식 교수
두 번째 발표자는 연세대학교의 하문식 교수였습니다.
하문식 교수는 요녕성 지역을 중심으로 서북한 지역까지 널리 발견되고 있는
대형 탁자식 고인돌과 돌돌림 유적을 집중적으로 소개하였습니다.
하교수는 “고조선의 사회상이나 문화상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당시 사람들이 제의를 행하였던 고인돌과 돌돌림 유적에 대한 검토를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주로 어디에서나 쉽게 바라볼 수 있도록 주변이 훤히 틔어 있는 조망이 좋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요령성 지역을 중심으로 위치한 개주 석붕산, 해성 석목성 1호 등 독립적으로 1기만 있고
높이 2미터 이상의 대형 탁자식고인돌은 제천을 행하였던 유적으로 볼 수 있으며,
서북한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돌돌림 유적 역시 제천유적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하였습니다.
▲ 정경희 교수
마지막 발표자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의 정경희 교수는
중국 백두산 공정의 논리적 허점을 짚어내고, 그 극복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정교수는 먼저 중국이 1990년대 장백산지역에서 홍산문화의 요소를 찾아내기 위하여
집중적으로 발굴하였던 ‘적석 단·총’, 곧 고제단 유적을 소개하고, 중국 측이 이를 은폐하기까지의 경위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1995년 여명 고제단 및 만발발자 고제단을 위시한 40여기의 고제단군을 발굴한 중국은
이들이 3층 원단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고제단군을 특징으로 하는 이 문화유형이
중국 내 타 지역에서 나타나지 않은 장백산 지구만의 특징으로 홍산문화와의 관련성을 제기하였다”며
발굴 초기 중국학계의 반응을 소개하였습니다.
이어 “그러나 이후 만발발자 고제단에 대한 3년에 걸친 전면 발굴 끝에
2000년대 초 만발발자 이하 장백산지구 고제단군에 대해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과 맞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거꾸로 뒤집을 수 있는 위험한 유적으로 판정,
결국 만발발자 유적의 제천시설 부분이 선별적으로 은폐되었고
여명 유적 또한 은폐되었으며 장백산지구에서 발견되는 고제단들은 숙신계로 평가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정교수는
“백두산 서편의 고제단군은 주로 산구릉 정상부에 자리하고 3층원단에 많으며 환호를 두른 경우가 많았기에
‘환호를 두른 구릉성제천시설(3층원단류)로 개념화할 수 있는데,
중국 요서의 우하량 지역에서 발견된 제천유적 역시 이와 꼭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며
나아가 “요동 백두산 서편지역의 B.C.4000년~B.C.3500년경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3층원단류) 및
요서 우하량지역의 B.C.3500년~B.C.3000년경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3층원단류)는
시기·내용 면에서 ‘배달국의 선도제천 유적’으로 볼 수 있으며,
이와 같은 형태는 청동기~초기철기시대가 되면서 한반도 남부지역의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적석단 · 나무솟대 · 제천사 · 선돌류)’의 형태로 이어졌고
이는 모두 동일 계통의 유적”이라 주장하였다.
결국 중국 측이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을 추진해간 결과,
오히려 B.C.4000년~A.D.600년경 요동·요서·한반도 지역을 관통하고 있던
맥족계 선도제천문화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 질의응답
학술대회에 참석한 150여명의 청중들은 이와 같은 놀라운 사실에 엄청난 양의 질문을 쏟아내었습니다.
질의 응답에 배정된 시간인 70분을 훌쩍 넘길 만큼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었는데요,
사회자인 김광린교수가 질문을 고르니라 진땀을 흘렸다는 후문입니다.
이번 학술대회를 축하해주시기 위해서
서울, 부산, 대전, 대구, 울산 지역 국학원, 대한국학기공협회, 단월드, 선도문화진흥회, 포항시에서
축하화환을 보내주셨습니다.
포항시에서는 축전도 함께 보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앞으로도 계속 동북공정의 허구성을 밝혀내고
나아가 세계 속에 한국사 및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