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회 유라시아문화학회 · 제 4회 경기국학원 학술대회
동북아의 ‘곰’ 전승과 고대사 인식의 확장
학회는 지난 7월 10일 토요일, 온라인 유투브 채널을 통해 한민족문화의 상징으로 알려진 단군신화, 그 중에서도 특히 ‘곰’ 전승이 갖는 역사문화적 의미를 동북아의 유서 깊은 ‘곰’ 전승이라는 거시적 시각으로 살펴보는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최근 동북공정 등 중국의 역사침탈이 심해져 가는 가운데, 이제는 단군신화의 곰 전승까지도 중국사이자 중국문화로 탈바꿈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단군신화를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한국사는 중국사로 바뀌게 된다. 이번 학술대회는 이러한 현재 상황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개최되었다.
충북대학교 명예교수인 김용환 교수의 사회로 이루어진 이번 학술대회는 최몽룡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중국 상고사에 있어서 용’이라는 주제의 기조강연으로 시작되었다. 최교수는 중국의 중원지역을 비롯한 동·서·남·북지역의 대표적인 고고문화에 나타난 용 토템전승을 살펴보고 용이 중국사에서 갖는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기조강연에 이어 ‘고조선시대 곰과 범의 역사적 실체와 토템문화의 전통’이라는 주제로 임재해 안동대학교 명예교수의 첫 번째 발표가 있었다. 임재해 교수는 고대의 토템 전통의 해석에 있어 상징적 의미를 읽어내는 ‘기의(記意)’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고구려 각저총의 ‘각저희’로 알려진 벽화는 그림의 전체적인 맥락과 사료의 관점에서 볼 때 신단수 아래의 곰·호랑이가 그려진 것을 주목해 본다면 ‘신단수도’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으며 이는 각저총 천정의 삼족오 그림과 합쳐 본다면 <고기>의 환웅본풀이(단군신화)를 상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며 “중국 요녕성 평강지역에서 출토된 금동장식, 일명 ‘천웅신조상’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아 고조선시대에는 새·곰·호랑이·늑대 토템족의 4부족 연맹체 국가라는 역사적 사실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환웅족과 곰족, 범족의 토템전통 뿐 아니라, 두 종족이 환웅족을 만나는 역사적 상황과 문화적 지속현상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들의 국내 이주나 국제혼 등의 이유로 다민족사회가 되어가는 한국사회의 모습에서도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역사 속에서 곰족과 범족의 적응과정을 본다면 동화정책보다 다중문화 정책을 써서 문화 상생을 이끌어 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하였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선자 연세대학교 교수는 ‘홍산문화 황제영역설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제로 논의를 시작하였다. 김선자 교수는 “중국학계가 고고학적으로는 곽대순(郭大順)을 필두로 홍산문화 발굴초기 돼지로 발표한 유물을 1990년대 이후 곰으로 해석을 바꾸는 한편, 신화학의 방면에서는 엽서헌(葉舒憲)을 내세워 곰 토템을 화하문명의 신앙이자 신성표상이라며 ‘천웅(天熊)신화’로 정리하고 있다”며 “특히 엽서헌은 홍산문화를 ‘곰 토템을 가진 황제족의 영역’이라 보아 중국학계의 홍산문화 황제영역설을 뒷받침하고 있는데, 홍산문화 황제영역설은 황제시대 이미 ‘황제黃帝’ 시대에 이미 ‘대일통大一統’이 이루어졌고, 그것은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이 5천 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는,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것으로 중화주의적 역사해석”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중국 측이 지속적으로 황제족의 곰토템을 주장하는 이유에 대하여 엽서헌이 2004년 발표한 논문 중 ‘단군신화와 한국인의 문화 동질성, 황제신화와 화하(華夏)의 문화 동질성 사이에는 같은 웅신(熊神) 신앙이 잠복해있다.’는 구절을 소개하면서 “황제족의 영역을 요서지역까지 확장시켜 이것을 연결 고리로 ‘황제족’의 곰 토템이 퉁구스 여러 민족을 매개로 한반도의 한민족에게 전해진 것으로 논리구조를 만들어 결국 한반도의 민족들까지 황제의 영역에 ‘포획’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김선자 교수에 이어 세 번째 발표자로 나선 이장웅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백제 웅진기 곰 신앙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주제발표를 하였다. 그는 “곰 신앙은 우리 민족의 출자를 설명해주는 단군신화에도 나타나는 중요한 자료임에도 현재 우리나라에는 구체적인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데, 공주지역에 곰나루, 곰굴, 사당 등의 증거물과 함께 곰 관련 전승이 많이 남아있는 것은 주목해 볼 만 하다”며 “이들의 역사적 배경을 추적해 본다면 공주지역의 먼 역사 뿐 아니라 나아가 한국 민족문화의 한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장웅 학예연구사는 “이런 곰나루 전설이 공주 지역에 특이하게 전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백제의 웅진천도 후 왕실과 마한계 토착 귀족 사이에 발생한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있는데, 이 마한계 토착집단인 백씨 집단은 고조선의 곰신앙 전통을 계승한 곰 신화를 가지고 있었던 유력세력이었으나 무령왕 이후 그 세력이 약화되면서 문헌기록에 남지 못하고 비극적 결말을 가진 곰나루 전설로 변형되어 전승된 것”이라 하였다.
마지막 주제인 ‘홍산문화 곰(맥)-마고삼신-매 표상의 기원과 변천’은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교수가 맡았다. 정교수는 “조기 신석기 이래 동북아 일대에 곰·도마뱀·돼지·사슴·매 등의 많은 신수들이 있었지만, 홍산문화기가 되자 요동지역의 대표 신수였던 곰·매가 요동·요서를 막론하고 대표적인 신수의 지위에 오르는 것은 당시 요동지역의 곰을 족휘로 하는 웅족이 환웅족과 결합하여 탄생한 맥족이 요서지역으로 진출하면서 동북아지역의 맹주가 되었던 정치 사회적인 변화상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이어서 “동북지역에서는 곰·매나 ‘곰-마고삼신-매’ 표상이 정형화되었던 것과 달리, 중원지역에서는 배달국에서 중원지역으로 흘러들어간 맥족의 후예들에 의해 토착 화하족 사회의 도마뱀·악어류 신수가 용으로 바뀌었으며, 화하족과 동이족과의 쟁투 과정에서 용·봉 표상이, 화하족 전통의 도마뱀·악어류 및 호랑이 신수가 중국도교로 흡수되는 과정에서 용·호 표상 및 ‘용-서왕모-호’ 표상이 생겨났는데, 뒷날 동아시아 정치질서가 중원왕조 화하족 주도의 방식으로 바뀌게 되면서 맥족사회에서조차도 ‘곰-마고삼신-매’ 표상이 사라지고 오히려 용·봉 표상이 성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맥족계 ‘곰-마고삼신-매’ 표상, 또 뒷날 중국의 영향을 받은 맥족계 ‘용-마고삼신-봉’ 표상은 종족의 신수 차원이 아닌 수승화강-조천사상을 표현한 선도 상징의 차원이었으나, 반면 화하계 용·봉 표상은 화하족·동이족이라는 종족의 신수 차원에 그치므로 중국학계가 그들이 익숙한 화하계 용·봉의 관점으로 맥족계 ‘곰-마고삼신-매’나 ‘용-마고삼신-봉’을 해석하는 것은 바른 접근법이 아니다.”고 일갈했다.
동북아의 곰 전승, 또 그 속에서 한국의 곰 전승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정립은 한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로,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동북아 고대사에 대한 인식이 한 단계 깊어지고 중국 측의 무리한 중화주의적 역사공정의 허구성이 명백해지게 될 것이다.